사라짐의 순서, 복지국가 노르웨이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

2015. 12. 14. 19:23영화, 미드 추천/주목할만한 영화

사라짐의 순서, 복지국가 노르웨이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

 

 

일단, 복지국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르웨이' 영화 '사라짐의 순서'를 보았다. 부제로 '지옥행 제설차'가 붙었는데...이건 뭐 국내에서 좀 더 자극적인 느낌을 주려고 달아놓은 제목이 아닌가 싶다. 그냥 부제 빼는 게 더 나을텐데 말이다. 영화는 일단 북유럽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 답게 하얀 설경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손발이 다 시려울 지경으로 영화는 추운 겨울과 눈쌓인 풍경 덕에 차갑고 춥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냥 스릴러라고 하기엔 블랙코미디 요소도 종종 등장하면서 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주인공이 날렵하고 멋진 젊은 배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하게 생긴, 어느날 죽어 돌아온 아들을 둔 노년의 아버지다. 노르웨이에서는 꽤 인지도 높은 중견배우로 보이는데 의외인건 그렇게도 복지국가로 부러움을 사는 나라치고 국내에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영화 '사라짐의 순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서인지 독일어처럼 억양이 거칠고 딱딱한 노르웨이 대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북유럽의 정서 답게 혹은 바이킹족의 후예라는 명성에 걸맞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대체로 무뚝뚝하고 딱딱하며 때론 죽음 앞에 소탈하기까지 하며 때론 매우 거칠고 잔인한 면모까지 보여주고 있다. 

 

 

 

 

 

 

 

영화 제목 '사라짐의 순서'와 같이 어느날 억울하게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들로 인해 시민상까지 수상한 아버지의 복수는 뜨겁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왜 죽였는지를 알고부터는 그와 관련된 놈들은 누가 되었건 거침없이 하나둘씩 제거해나가는데, 마치 그 모습은 그의 직업처럼 겨울 내내 쌓인 눈을 치우는 제설차를 운전하듯 일말의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그 사라져야 할 인간의 꼭대기에 앉아있는 보스에게까지 접근해 가는데...영화 중반부터 일은 이상하게 엉뚱한 쪽으로 휘말리게 된다.

 

 

 

 

 

 

실제로 노르웨이에서 마약거래가 성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복수를 조직간 세력다툼으로 오인하면서부터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그래서 조직간 잔인한 복수를 맹세하며 사태가 점점 악화되는데 세르비아 출신의 조직들이 하는 말처럼 '눈에는 눈, 아들엔 아들'이란 식으로 이 복수극은 점점 가족간 혈육간 유혈극으로 치닫게 된다. 물론, 주인공인 아버지 닐스가 자신의 아들의 죽음에 대해 분노했던 그 심정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최초의 범죄를 저지른 조직의 보스에게도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결국 상대조직도 주인공도 모두 그의 아들 납치를 시도하면서 영화는 파국을 향해 방향을 돌리게 된다.

 

 

 

 

 

 

 

이 영화 '사라짐의 순서'를 보면서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아버저의 복수로 인해 하나 둘씩 사라져야 했던 극중 인물과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매번 죽을 때마다 친절하게 크레딧으로 올라온다는 점이다. 하나 둘 셋...이 일과 관련해서 참 많이도 사라진다. 사라짐의 순서에 있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일단 사라져야 할 명분이 주어지면 그냥 주저없이 죽어나간다. 심지어 두들겨 맞다가 "영감! 지친거야? 핫하하하..."라며 서로 어이없이 웃어대다가도 총에 맞아 죽는 등 블랙코미디 요소도 간혹 나오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 '사라짐의 순서'가 노르웨이 영화라서인지 이민자들로 구성된 조직원들이 나누는 대화도 귀에 들어오는데, 이를테면 전세계인들이 알고 있듯 노르웨이가 세계최고의 복지국가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 말에 따르면 햇볕이 따사로운 나라치고 복지국가는 단 한 나라도 없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데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모든 게 살아가는데 큰 지장 없는 자연환경을 비롯한 여건이 되는 나라일수록 오히려 인간의 탐욕 등으로 양보나 배려가 없고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들린다. 반대로 혹독한 기후조건과 척박한 자연환경 등을 가진 노르웨이 같은 나라일수록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고 함께 잘 사는 방법을 강구하다보면 그게 사회주의던 뭐던간에 추구하던 이상이 좀 더 현실화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르웨이 처럼 말이다.

 

 

 

 

 

 

실제로 노르웨이란 나라의 기후조건이 모르긴 몰라도 북유럽에 속한 나라답게 영화 '사라짐의 순서'에서처럼 겨울도 길고 추위도 장난 아닐듯 하다. 그러고 보니 흔히 복지국가라 불리는 핀란드나 스웨덴, 덴마크 이런 나라들이 다 비슷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일년 중 맑고 화창한 날이 몇일 안된다는 영국보다도 훨씬 위쪽인 북위도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복지국가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날거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물론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요소를 위해 그렇게 그려지기는 했을테지만,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복지국가에서 일어나는 사건치고는 매우 황당하기도 하고 잔인하고 스케일도 제법 있는 편이라 영화 자체가 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영화 '사라짐의 순서'는 지난 2014년 2월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큰 주목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한스 페터 몰란트 감독 뿐 아니라 출연하는 배우들 이름도 스텔란 스카스가드, 비리기트 요르트 소렌슨, 팔 스베르 하겐, 브루노 간츠 등 영어권과는 다른 격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름들이다. 낯설기도 하지만 무슨무슨 '센'으로 끝나는 이름들이 많은 것 또한 노르웨이 답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와는 좀 색다른 그런 영화를 찾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오래도록 머릿 속에 각인되기에 충분한 그런 영화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확실히 우리에게 익숙한 헐리우드식 그런 영화들과는 다른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 겨울 복지국가 노르웨이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사라짐의 순서: 지옥행 제설차'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