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살인, 마땅히 죽어야할 놈들을 벌했을 뿐인데...

2015. 12. 8. 21:20영화, 미드 추천/주목할만한 영화

어떤살인, 마땅히 죽어야할 놈들을 벌했을 뿐인데...

 

 

23분 35초마다 한 건씩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는 나라가 있다. 그러고도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충격에 평생을 고통으로 얼룩지는데 반해 가해자는 고작 3년 혹은 6년의 형량을 받고 그 마져도 보석이나 합의 등으로 감형을 받거나 출감 후에도 전혀 뉘우치는 기색 없이 또다시 그들이 말하는 '사냥'에 나서는 그런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바로 '어떤 살인'이다.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지만, 이런 류의 사건과 실제로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일들이 이 땅에서 버젓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죄와 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30분도 채 안되는 시간마다 성폭력이 일어나고 그보다는 덜하다지만 성추행은 출퇴근길 버스, 지하철 할 것 없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데다 그런 범법자들이 신분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만연할 정도면 이미 이 나라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내뱉았던 대사처럼 '강간의 왕국' 수준이다. 하지만,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범사회적으로 그저 피해자가 안됐다거나 나에게는 그와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거라 안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성폭력과 관련한 범죄행위에 대해 우리나라는 술을 마셨을 때 '심신미약 상태'라는 괴상한 법처분 관행이 비일비재하다. 그런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범죄에 한해서는 퍽이나 관대한 나라이기도 하다. 게다가 특수상황이라고 해도 사형제도 폐지와 관련해 응당한 처벌이 있어야 함인데 이에 대한 변별력 또한 무척 떨어지는 그런 나라다. 준법을 말하면서도 그 법이라고 하는 잣대부터가 한참이나 잘못되었거나 개선의 의지가 몹시 부족해 보인다는 얘기다. 23분35초마다 1건이라고 하면 지독하게 심각한 수준 아닌가? 법조계에 계신 양반들 자제한테는 그 비슷한 일도 일어날리 만무해서인지 몰라도, 상류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일어나지도 않을 미천한 서민들한테서나 일어나는 그런 일이라서 그런걸까? 어떻게 이렇게 미개한 법이 있나 싶다.

 

 

 

 

 

 

그래서인지 이런 현실을 개탄스러워했는지 안용훈 감독은 영화 '어떤살인'을 통해 이 나라 현실에서 한 여자가 얼마만큼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 잔인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때는 국가대표를 꿈꾸는 사격상비군으로 기량을 뽑내던 유망주가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장애인이 되고 그런 장애를 안고 있는 이가 이 사회에서 조금도 배려받지 못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성폭행 사건으로부터 얼마만큼 무참하게 내동댕이 쳐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경찰은 어디 있었으며, 법은 뭣하러 있는지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있기나 한건지 영화를 보는 내내 심기가 무척 불편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결국 누구를 원망할 게 아니라 사회를 원망해야 하는게 아니냐던 주인공 채지은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에 직접 메스를 들이대어야만 했었나 싶다. 통쾌한 복수극 같지만 끝내 불행할 수 밖에 없었던 사격유망주 채지은...마지막 순간에도 뇌사상태에 빠지고 나면 가해자였던 범인에게 간이식을 해야만 하는 이런 개같은 상황을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아라한장풍대작전으로 데뷔했던 윤소이가 연기하는 강형사는 남같지 않은 딱한 상황에 처한 지은을 바라보면서 그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 동생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라도 하듯 이 모든 상황에 종지부를 찍게 되지만 끝내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과는 멀어도 너무 멀리 와버린 한 소녀가 구제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기어이 죽음으로 모든 불행과 고통에 막을 내려야만 했는지...

 

 

 

 

 

 

영화 '어떤살인'을 다 보고 난 뒤에도 착찹한 마음이 휘몰아쳤다. 실제로 성폭력사건은 그렇게 쉴새없이 끝도없이 마구마구 일어나는데 반해 해결이라고 하는 것들은 너무도 미미한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안다. 피해자가 겪을 수많은 고통의 강도에 비해 가해자에게는 너무도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미국같은 선진국에서도 인권이고 뭐고 범죄에 대해서는 강력한 사리분별을 하고 있는게 그저 부러울 뿐이다. 구지 꼭 피해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기의자에 앉혀 태워죽이던 독극물로 삭혀죽이던 교수형에 처하던 사형만이 해답이 아니더라도 구형 하나 제대로 때리지를 못하는 이유가 뭔가 싶다. 외국에서는 이따금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130년형, 260년형 같은 엄청난 형량을 때리지 않던가. 단순히 무기징역이라는 판결보다 상징하는 바가 훨씬 큰 이런 해법도 줄 수 없다는 말인지 법조계에 대해 혀를 차는 일이 언제쯤 끝이 날지 모르겠다.

 

 

 

 

 

 

'어떤 살인'은 여성들이 보아야 할 영화이기 이전에 남자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야동에 심취해 사는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그런 영화다. 개인적으로 나도 남자지만, 모든 성범죄의 근원은 '야동'이라고 생각한다. 음란물은 누군가에게 해소의 역할 자극제의 역할을 하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충동을 부른다. 특히 제어가 안되는 이들에겐 망설임의 여지도 없이 그대로 범죄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나 촉매 역할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10년새 성범죄는 3배나 급증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만 있는 그런 일이 절대 아니다. 성범죄는 마땅히 사라져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 시급한 해결 및 개선책은 극형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이런 "장난하나?" 처벌 말고 보다 현실적인 강력한 처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생각해보라. 이미 정신적으로는 살해에 가까운데 그걸 보고도 어떻게 관행처럼 무책임하게 형량을 그렇게 밖에 못주는건지. 그리고 일선 경찰서 뿐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와 제도 또한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가족부의 존재이유는 지금도 전혀 모르겠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일만 골라 하는 여가부는 도대체 뭐하는 집단인지...허허...웃음만 나오네.

 

 

 

 

 

 

요며칠 보았던 한국영화들이 대게 영화적으로 재미있는 요소들과 더불어 즐거운 감상이었던 것에 반해 '어떤살인'은 다소 심각한 내용과 주제를 다루고 있었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영화라고 여겨진다. 아울러 이런 영화를 만든 안용훈 감독 그리고 강형사 역을 하면서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배우 윤소이, 주인공 채지은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배우 신현빈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신현빈은 그간 청순한 마스크로 보여주었던 이미지와 달리 여배우로서도 소화하기 힘든 배역을 사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무리없이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된다. 언어장애까지 겪고 있는 채지은 역을 하면서 내면연기까지 하기란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윤소이 또한 호소력 있는 인상적인 연기가 이제 발군이다. 하마터면 못알아볼 뻔 했다.

 

 

 

 

 

 

잔잔하지만 요근래 보아왔던 그 어떤 한국영화보다도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그런 영화가 바로 '어떤 살인'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이 땅의 많은 남성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을 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법조계 양반들, 영감님들도 부디 이 영화를 좀 보았으면 싶다. 국회의원들도 말이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지만 이 영화를 보고 조금만이라도 생각을 바꾸었으면 한다.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얼마나 안일했는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말이다. 이 땅에서 더 이상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일단 제대로 된 응징만이라도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살인'에서처럼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말이다.